2014-09-07 구미국제교회 주일예배
창세기 8장 13-19절
“노아의 순종”
오늘도 이자리에 나오신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노아의 이야기는 모두가 잘알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 지기도 하고 현재 역사가와 탐험가들에게 언제나 논란을 제공하고 또 연구거리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노나의 방주를 찾기위해 찾아나서고 역사로 그 시대를 알아가 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도 그러한 노아를 조금더 알아 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노아의 이야기에서 제일 중요한 노아가 당대 의인이라는 이야기가 아닌 노아의 인간적인 보습과 노아 홍수이전이 아닌 홍수 이후의 모습을 조금더 함께 보며 노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도대체 무엇이 악한 세상에서 노아를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나를 오늘 우리가 한번 보았으면 합니다
1.비가 그치고 홍수가 끝날 때 쯤..
그런데 오늘 보문은 우리를 조금 당황하게 합니다. 왜냐면 분명 노아는 물이 걷어 지며 땅에서 생활이 조금은 가능 하여 진것을 알고도 그는 땅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비가 그치고 일년이 다되어 갈 때 노아는 방주의 창문을 열어 까마귀를 놓았습니다. 까마귀가 물이 많아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비둘기를 내보내고 몇번을 그렇게 하며 알아 보던중 비둘기가 돌아 오지 않았고 노아는 방주의 뚜껑을 제치고 밖을 보았을때 물이 없어 진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14절에 노아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57일을 더 방주 밖으로 나가지 방주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홍수가 나고 방주에서 300일을 떠 다니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감사했을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처음 탈때 세상에 비가 오기 시작하였고 그다음에 방주 옆으로 많은 죽은 사람들이 함께 떠다니고 하는 것을 상상해 보다면 정말 방주 안은 놀라운 구원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래서 방주의 창문은 방주위에 있으며 문도 없고 뚜껑만 만들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지로 여행을 가능 것도 아니고 어디를 가기위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안에서 밖을 보지도 못하고 오직 방주 안에서 생활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얼마나 다행으로 여겼을 까요? 아마도 “우린 살았어..” 하며 크게 기뻐 했을것입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방주에 많은 동물들과 함께 타고 있으며 그들은 기쁨도 잠시이며 그안에서 동물들과 함께 있는 생활에 많이 힘들었을 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밖으로 나가고 싶었을 까요? 햇볏도 보고 싶고 땅에서 뛰어 다녀보고도 싶고 또 배안에 음식이 점점 떨어져 가는 것을 보며 불안한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방주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이것은 바깥세상에 대한 대단한 궁금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밖을 보니 물이 말랐으며 땅이 보였을 것입니다. 아마 배도 멈추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우리의 상상과 다르게 그들은 다시 방주 안에서 나오지 않고 57일을 더 있었습니다.
너무나 궁금해서 본 바깥에 나가지않고 그들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다리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저를 놀라게 합니다. 만약에 저라고 생각을 해본다면 저는 당장에 뛰어 나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땅을 만져 보며 우리가 해냈다고 환호를 질럿을 것입니다. 얼마나 기뻐했을 까요? 안봐도 뻔하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되는게 노아는 다시 방주에서 기다립니다. 땅에 물이 거의 없는 것을 보았을 것인데 그들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역시 당대 의인이라 칭한 노아는 다른 사람인듯합니다. 아마 가족들도 함께 기다렸을 까요? 나가자고 답답한 이곳 방주에서 나가서 신성한 공기와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고 아우성을 쳤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기쁨은 잠시입니다. 인간에게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는 것이 입니다. 한마디로 좋은 것도 계속되면 좋은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처음 먹는 고기가 얼마나 맛있느지 모릅니다. 그런데 고기를 계속 먹다보면 맛있다기 보다 느끼하고 먹기가 싫어 집니다. 인간에게 얼마나 이것이 빠르게 작용하는지 모릅니다. 아들이 처음 백점을 받아 오면 그렇게 기쁩니다. 그런데 계속하여 받아오면 기쁘다기보다 당연하게 느끼며 안받아 오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방주에서의 시간이 감사했겠지만 300일 동안 살면서 그들은 감사한 마음도 마음이지만 빨리 나가고 싶었는 마음이 더 클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 방주 안에서 57일 을 더 기다리며 그안에 있었습니다. 거의 비오기 시작하여 일년이 넘게 방주에 있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요? 우리도 좋은 표정지으며 방주에 있었을까요? 글쎄요 우리가 인내를 얼마나 알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있으며 우리는 인내를 알아야 할때가 있습니다. 인내를 우리는 그저 기다리는 것이라 하는데 그것은 틀린 것이죠.. 로마서 5장3-4에서 인내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연단되어 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노아에게 주어진 57일의 연단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화장실이 급해서 집앞까지 왔는데 문이 잠겨 열쇠를 가방에서 찾으며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모든 신경이 민감해지고 무슨말도 안들릴 것입니다. 노아의 가족들은 노아에게 나가자고 소리를 쳤을 수도있습니다. 모르는 일 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가족들은 인내하며 방주에 있었습니다.
인내가 필요할때 우리는 인내를 해야 합니다. 목적지에 다와가면 우리는 조급해 지는 마음을 참아야 합니다. 비행기가 땅에 착륙하자마자 일어나 가방부터 꺼내는 사람을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스튜디어스들이 일어나 다들 앉으라고 소리를 칩니다. 위험하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일어나 가방을 꺼내고 먼저 나가기 위해 비행기 복도로 나와 앞사람을 제촉합니다. 인내는 무엇일까요? 그저 기다리는 것일까요? 기다린다는 것으로는 불충분 합니다.
인내는 소망을 향해 내딛는 첫걸음 입니다. 바로 마른땅을 기대하며 완전한 구원의 마지막 관문에서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저 방주에 들어와 있는 것은 완전한 구원이 아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방주가 땅이 아닌 바다한 가운데 있었다면 그들이 나올수 있었을 까요? 그리고 혹여나 물이 빠지며 나무나 돌에 방주가 부셔졌다면 아마 끔찍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땅에 물이 빠져 홍수가 많이 사라졌다고 섣불리 땅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는 삶가운데 얼마나 기다립니까?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는 가요? 아니면 아예 기도를 하지 않는것은 아니가? 조금 불안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기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다리는 것은 소망의 시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씨를 뿌리고 다음날 열매가 나오니 않고 쌔싹이 나오고 물을 주고 햇볏과 함께 자라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하시는 말씀..(15절)
57일 후에 땅이 완전히 말랐습니다. 14절에 “땅이 말랐더라”에서 말랐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야베솨”라고 하며 그뜻은 땅이 가뭄때 처럼 완전히 말라 버린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15절에 노아를 부르시며 그들을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나오라는 것이 그저 이제 나와도 된다가 아니라 히브리어로 본다면 강한 억양으로 지시하여 방주에서 나오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노아의 가족들은 방주에서 나올수가 있었습니다. 방주를 만든 것도 지시에 의해서이고 방주에 타게 된것도 지시에 의해서 이고 방주에서 내린것도 지시에 의해서 입니다. 그리고 방주를 만들라고 하실때도 노아는 순종을 했으며 방주에타라고 하실때도 노아는 순종을 했고 방주에서 나올때도 노아는 순종을 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순종을 했고 그것이 노아를 구원하였다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알수가 있습니다.
순종한 노아는 구원이었고 불순종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아닌 심판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았으며 합니다. 노아를 창세기 6장 8절에서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의인은 노아인데 노아는 순종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한가지 오늘 노아를 통해 분명하게 알았으면 합니다.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순종을 해야 하는데 언제 해야 하나요? 모든 순간 마다 순종해야 합니다. 때론 말도 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순종해야 합니다. 비도 오지않고 하루하루가 그저 평안한데 홍수가를 대비해 산에다고 엄청나게 큰 배를 만들라고 하는 하나님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우리집 큰 딸 얼굴이 시커먼 은빈이에게 “앞으로 이세상은 험난하니 공부를 열심히 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믿음 생활도 잘하여 좋은 직장에 좋은 남자 만나 시집가서 잘살아야 한다.”고 아무리 이야기 해봐야 9살 은빈이에게는 그저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순종은 바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상황 가운데 필요합니다. 우리가 실천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실천하는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앞에 차려진 밥상에 밥을 먹으라고 한다면 그러게 어려운 순종이라고 할수 없습니다. 진정한 순종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며 힘든 상황에서도 해내는 것이고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라는 것이 바로 순종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방주에서 나오라고 할 때 까지 그들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나오라고 할때 다시 나왔습니다. 순종이 바로 노아를 구원했습니다. 순종앞에 바로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다는 것에 우리는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부르시고 노아가 응답한 것을 보며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까요? 하루에 얼마나 하나님을 찾으세요? 기도는 얼마나 하시는 가요? 성경은 얼마나 읽고 있는지.. 혹시 주일 아침에 성경에 못찾아서 두고 오신 분은 안계시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그런 분들 안계실 것이지만 우리는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기도와 성경을 보는 것외에 다른 방법은 어렵습니다. 우리가 쉽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기도와 말씀 뿐입니다.
기도를 우리가 생활화 해야 합니다. 성경을 즐겨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실 것이고 만약에 듣는다면 순종을 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어디를 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면서도 순종을 하지 않는 자는 없습니다. 듣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되로 믿고 행동하다가 멸망하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순종은 바로 의지 입니다. 방중에 들어가고 나오고 모든것을 노아는 하나님을 의지 하여 행동하였습니다. 우리인생에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 하여 살아야 합니다. 의지는 믿음에서 나오고 로마서 10장 7-8절에 믿음은 바로 들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 것 처럼 우리도 하나니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어F게 들을까요? 바로 기도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과 말씀에 바로 순종하십시오. 그때에 노아가 만났던 하나님을 우리도 만날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하는 우리국미국제교회 지체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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