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8장 1-19절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4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5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와이즈코르”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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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노아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노아의 이야기를 너무나 잘 압니다. 주일 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많이 듣고 영화로도 많이 나오며 언제나 설교에 등장하는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크리스찬이 아닌 사람들도 많이들 알고 있는 인물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노아 이야기를 한번 같이 보았으면 합니다.
노아를 통해 하나님은 순종의 노아를 당대 의인이라 칭하셨지만 험난한 홍수의 여정을 노아는 방주에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노아도 보통의 마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분명 물이 차오르며 사람들의 고함 소리와 엄청난 비 소리에 아마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홍수가 일어 나고 난 후 홍수 통한 주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노아에게 주신 그 놀라우신 사랑이 분명히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1. 기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방주는 지금의 배모양이 아닌 그저 네모난 모양의 길이가 130미터 정도 되고 높이가 30미터 정도 되는 네모난 방주입니다. 이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실험 결과 물위에 떠있기에 가장 이상적인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주에 탄 노아와 가족들 그리고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라고 1절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방주에 탄 노아를 기억하셨습니다. 기억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모르던 것을 떠올려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로 “와이즈코르”라고 하는 “기억하다” 라는 뜻으로 바로 “자카르”라고 하는 히브리어가 어원입니다. “자카르”는 바로 ‘새기다’라고 하는 뜻입니다.
기억하시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탄 방주를 마음에 새기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방주에 태웠다고 그냥 잊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언제나 마음으로 걱정하시며 우리를 생각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엄청난 사랑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며 우리를 향하신 그 분의 인자하심을 보여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기억하신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현 상황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모르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방주에 주님께서 노아와 그 권속들과 모든 육축들을 태우고는 몰라라 하신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때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1절에 기억하사라는 구절은 바로 노아의 홍수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기준을 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노아를 부르시고 방주를 만들라 하시고 태우시고 비를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8장 1절 이후에 비는 그치고 홍수가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고 그들을 나오라 하십니다. 노아의 홍수스토리에 바로 제일 기준되는 부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억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우리를 가슴에 새겨 놓은 것처럼 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대단합니다. 그분의 사랑을 우리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를 한 시도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우리도 그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우리를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이 너무나 대단하십니다. 우리가 받은 그 사랑을 우리도 주님을 “와이즈코르” 바로 마음에 새기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잊어 버립니다. 언제 우리가 그랬냐는 듯이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잊어 버리고 홍수 후에도 우리는 다시 타락해 버리는 것을 보며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사 바람을 땅위에 불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는 땅 위의 물을 날아 다니시는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 하시느니라” 땅이 혼돈할 때 그 수면 위에 하나님이 운행하셨다고 하십니다. 그 뜻은 마치 독수리가 자신의 둥지에 있는 새끼들 머리 위를 훨훨 날아 다니며 지켜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1절에서 우리는 창세기 1장에 보이셨던 바로 그 부분을 떠올리며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방주에 있는 150일간 우리를 위해 수면을 다니시며 다음 일을 준비 하시는 분이 심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때론 주님께서 아무런 응답이 없어 보입니다. 때론 주님께서 우리를 외면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사.. 바로 우리를 언제나 지켜 보시며 다음 단계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이심을 우리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2. 회복의 하나님.
2절에 비가 그치고 3절에 물이 땅에서 “점점 물러가서” 150일 후에는 마른 땅이 점차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2절에 보면요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여기서 ‘닫히고’와 ‘그치매’를 보며 우리는 이 엄청난 사건의 홍수가 진행형이 아니라 완료형으로 완전히 끝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홍수는 이제 끝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일 후에 줄어 들고..” 물이 땅에서부터 물러갔습니다. 줄어 들고 있는 것입니다. 점차 땅이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물이 물러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1절에서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셨습니다.
10개월 전쯤에 인터넷으로 씽크대를 구입하고 철물점에 가서 수도 연결하는 것을 배우고 재료들을 구입했습니다. 처음이지만 자신이 있었습니다. ‘인터넷’에 ‘네이버’가 저의 스승 인지라 네이버로 몇 번씩 방법을 확인하고 배우고 그렇게 수도공사를 직접하여 씽크대 설치를 깔끔하게 하였습니다. 너무나 기뻤습니다. 제가 그런 것을 했다는 것이 기쁘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공사를 다 끝내고 물을 틀어 보니 물이 폭포 같이 나오는 것을 보며 희열이 느껴지고 정말 기분이 좋았는데 조금 있으니 바닥에 물이 흥건 한 거에요. 그래서 물을 잠그고 밑을 다시 보니 배수구에 제대로 호스를 넣어 놓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배수구에 호스를 다시 넣고 걸레로 물을 닦고 난 뒤 난로를 켜고 선풍기 3대를 켜고 한 시간 뒤에 와 보니 물이 완전히 말라서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풍기 3대도 바닥의 흥건한 물을 금방 말려버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람으로 물을 줄어 들게 하신 이 부분을 우리는 하나님께서 수면에 바람을 불게 하시어 물을 줄어 들게 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바람이라면 얼마나 놀라운 바람이었을까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바람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모세의 홍해 때에도 주님은 바람으로 바다를 가르십니다. 그때도 바람이 밤새도록 불어와 출애굽기 14장 21절에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마른 바닥이 된지라.” 그렇습니다. 주님의 바람이 불면 바다도 가르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리고 바다가 마른 땅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의 “물이 물러가서 물러가고”라는 뜻은 돌이키는 뜻이며 다른 뜻으로 본다면 회복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람을 불게 하시어 점차 물이 줄어들었다고 하였습니다. 물이 물러가서 땅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땅을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다시 소망을 품어 봅니다.
40일이 내린 비에 150일 동안 홍수가 지속되었지만 하나님의 바람 즉, 하나님의 역사로 회복 되어지는 것을 보며 고난과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도 근심과 상한 마음이 있는 우리들을 주님은 그냥 있으시는 것이 아니라는 소망이 생깁니다.
고린도후서 4장 17-18절에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는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홍수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후에 하나님께서 회복하여 가시는 것을 보았으면 합니다. 홍수가 영원 할 것 같이 40일을 주야로 땅에서부터 물이 솟아 나고 하늘에서 퍼 붓는 가운데 홍수가 영원 할 것 같을 것입니다. 아마 영원히 방주에 있다가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도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어떠한 문제가 있더라도 현재 상황의 정도가 희망이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바람으로 물이 점점 물러가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우리의 문제들 우리의 힘든 고통들 우리의 무의미한 시간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물러가며 점점 땅이 드러나듯이 우리에게 회복의 시간들이 찾아 올 것입니다.
3.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
4절에 보면 배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7장 11절에 보면 2월 17일에 홍수가 시작되고 150일만인 7월 17일에 아라랏산에 배가 안착을 한 것입니다. 아라랏산은 문헌들이나 모든 주석이 똑같이 터키와 러시아 이란의 국경이 만나는 지점이며 오늘 날에도 아라랏산이라 불리는 해발 5160 M의 산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아르메니아 인들이 “후손의 산”을 뜻하는 ‘하르야라드’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전설에도 이곳이 인류의 요람이라고 하였습니다.
5,160m가 어느정도 인지 아십니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이 바로 백두산인데요. 바로 2,750m입니다. 대략 백두산 2배가 됩니다.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설명 드리자면 중국 운남성에 가면 옥룡설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대충 뜻이 설산이 만년설을 이야기합니다. 옥룡은 만년설에 높은 물이 우유 빛처럼 옥색의 용 같다고 하여 그곳을 옥룡설산이라고 하는 합니다. 그곳에 가려면 우선 운남성 리장이라는 곳에서 봉고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서 3350m 정도 까지 가서 거기서 케이블카 타고 1200m 정도 올라가면 대략 4500m정도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부터 200m정도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습니다. 거기가 끝입니다. 물론 제일 높은 곳이 5700m정도 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케이블카 내려서 200m 올라가는데 금방 갔다가 와서 밥 먹어야지 했는데 중간에 포기하고 나니 이게 금방이 아니더라구요. 한발 한발 내딛는데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그런데 옆을 보니 다른 분들은 케이블카 내리는 곳에서 휴대용 산소통을 사셔서 올라. 산소가 모자르기 때문에 산소가 필요했습니다. 내려와 보니 경고라는 문구와 “함께 산소 부족으로 잠시 동안 전신에 일시적 마비와 혹여나 심신이 약한 자는 뇌 손상을 줄 수 있습니다” 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아라랏산은 아주 높은 산 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랜시간 동안 물에 떠 다니던 방주가 처음으로 땅에 닿아 머문 곳입니다. 물이 빠지며 바로 제일 먼저 하나님께서는 방주를 세상의 끝이었던 곳인 높은 산 아라랏산을 세상의 제일 낮은 곳으로 만드시고 그곳에 방주를 머물게 하신 것입니다.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방주에 안식을 허락하신 것입니다.더 이상 떠다니지 않는 방주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우리의 여정이 우리의 무의미한 시간들이 언제 까지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주님의 시간이 되면 안식한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4. 확신을 주는 기준.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은 예전이나 지금도 여전하다는 것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죄인 되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기억하사 이 땅에 오시어 우리와 하나님의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고 우리를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평안하게 하시는 바로 그 놀라운 사랑을 그대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와이즈코르” 바로 기억하사 이곳에 오셨습니다.
확신을 주는 기준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는 것에서 나옵니다. 확신을 주는 기준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하시는 것에서 나옵니다. 확신을 주는 기준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식이라는 평안을 두시는 것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오늘의 말씀가운데 확신의 기준을 찾으셔서 그 어떤 순간에라도 확신의 기준으로 승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와이즈코르” 기억하사.. 그리고 우리도 “와이즈코르” 언제나 예수그리스도의 그 사랑을 기억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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