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09 구미국제교회 주일설교
마태복음 26장 45-46절
[기도]깨어있어 승리하는 삶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이틀 전의 내용입니다. 너무나 재미있게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통해서 함께 교제를 하시며 그들에게 언제나 동일하시며 큰 일을 준비 하면서도 동요되거나 두려워하시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통해 교제하시며 함께 식사시간을 가지며 즐거운 시간들을 가지십니다. 히브리 지방의 다같이 먹는 식사 시간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각 나라마다 식사 문화가 다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식사를 빨리 하고 식사 시간에 예절같이 말이 너무 많아도 무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먹을 때 쩝쩝 소리를 내는 것도 안되고 밥이나 반찬을 흘리는 것은 허용이 안됩니다. 무언가 조용히 먹는 것을 선호 합니다. 그리고 다같이 식사를 하는데 어른이 먼저 숟가락을 들어야 하고 아이들인 어른 보다 먼저 밥을 먹고 자리를 일어 나서도 안됩니다. 꼭 제일 웃어른이 수저를 놓아야 일어날수 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햇가족이 되어 가며 이러한 예절도 많이 사라 진지 오래인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는 히브리지방은 대체적으로 식사 시간이 아주 길고 무언가 특별한 행사 같고 꼭 토론장 같습니다. 주제에 맞게 서로 예기를 나누고 토론하며 서로 의견과 설득과 맞은 이론이 나오기도 하고 하는 곳이 바로 식사 시간입니다. 다같이 먹는 저녁 식사 시간은 언제나 포럼 현장입니다. 그리고 식사의 주인공도 존재를 합니다. 그래서 마태 복음 초기에 마태의 집에 초대를 받았을 때 보통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식탁은 아주 거룩한 곳입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저녁 식사를 하는 식탁에 세리와 함께 계시니 큰 이슈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최후의 만찬을 통해 예수님은 전혀 다른 모습 없이 한결 같이 동일한 모습으로 다른 이들에게 두려움이나 십자가의 형벌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기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기는 커녕 언제나처럼 겟세마네 동산에 가시어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날은 제자들 중에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라고 가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름에 성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누구의 아들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베드로와 세배대의 아들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기도하러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마지막 기도를 더 힘있고 열심을 다하여 기도하셨습니다. 누가 복음에 따르면 22장 44절에 땀이 땅에 떨어지면 핏방울처럼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땀이 핏방울처럼 될 만큼 열심을 다하여 기도를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좀더 귀를 기울여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간절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지금 가운데 이렇게 기도할 일이 있었는가요? 아니면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기도 할만한 큰 일이 없었는가요? 그런 큰 문제가 없어 기도를 안했나요? 아니면 그렇게 까지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가요? 아마 정답은 기도는 언제나 간절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 정답이겠죠? 우리도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주님께 언제나 처럼 앞에 나와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할 때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신것은 바로 마음에 힘듬이 있어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이시지만 인간의 옷을 입고 태어나신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똑같은 통증을 가지시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라고 우리와 다르게 통증도 없이 하나도 아픈 것 없이 십자가를 지신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여기서 오해를 하면 안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당연히 우리는 예수님께서도 우리처럼 같이 아파하시고 배고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부분에 있어 이렇게 기도로 준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지만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써의 능력도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무슨 고통을 당하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어떻게 하셨나요? 십자가를 작은 걸로 하셨나요? 아닙니다. 그는 바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38절에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있으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잔을 자신의 원대로 말고 아버지의 원대로 즉,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여 달라고 하십니다. 기도는 나의 뜻을 관찰하고 하나님에게 나의 의견을 제시하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 보고 그 뜻대로 행하기 위해 우리가 확신과 확증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 후에 45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고 쉬라고 하십니다. 38절에 힘들어 하시던 예수님께서는 45절을 통하여 확신을 가지신 예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렇듯이 기도는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이 있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의 시작으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시고 마지막에도 이렇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 십니다.
기도는 바로 우리가 모두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이 나는 인생이라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생각해보면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작게 생각해 본다면 우리에게 문제가 왔을 때는 바로 기도로 시작하여 마무리 또한 기도하며 끝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작은 개념으로 본다면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무리 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기 바로 전에 우리는 바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아마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하루 동안 지켜 보실까 생각해 보면 기도가 안나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기도하며 잠이 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완벽한 자녀일 것입니다.
은빈이가 아침에 일어나 아빠 하며 볼에 뽀뽀하며 오늘 하루도 회사 잘 다녀와요 하며 인사 하거나 신혼부부가 아침에 남편 출근 길을 배웅하며 여보 사랑해 하며 입술에 뽀뽀하는 것도 우리가 하루 힘내는데 큰 도움이 되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아마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예뻐 보이실까 생각을 해본다면 우리가 아침에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38절, 40절, 41절 이렇게 3번이나 깨어 있어 라고 하시며 제자들을 깨어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이들은 왜 그토록 졸았을까요? 이들은 예전에 보면 밤이 새도록 그물을 던지던 어부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3명의 제자들이 졸았다는 것을 안타까워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그렇게 졸지 말고 예수님에게 기도로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하는 안타까움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알고 있는 결과를 보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쉽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어떻게 살아 가는가요? 41절 말씀처럼 깨어 있어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를 하고 있는가요? 정말 깨어 있는 가요? 우리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처럼 졸고 있는 제자들이 아닐까요? 아니면 우리는 졸지 않고 주님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의 모습일까요?
이것도 그렇다면 정말 잠 안자고 매시간 매분 매초마다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작은 실 생활 속 적용으로 본다면 우리가 하는 식사 기도도 어떻게 본다면 우리가 언제나 깨어 있게 하는 기도일겁니다. 하루에 적어도 2-3번 하는 식사 기도 우리가 그냥 작게 생각하며 흘려 보내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 시간은 우리 제자들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이 들어 버린 것처럼 지나 가는 시간이 아니라 주신 양식에 감사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삶 가운데 하루에도 몇 번이고 결정하여야 하는 것이나 난처한 상황들 가운데 결정을 해야 하는 문제들이 생깁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저 나의 이익과 아니면 당연한 부분으로 생각을 하고 걸어 가지만 기도하며 다시 한번 본다면 아마 다른 방향과 다른 결정이 생길지 모릅니다. 아마 그런 일들이 생긴다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이리가 잊지 않아야 합니다. 깨어 있어 기도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라고 생각합니다.
깨어 있기를 원하는데 도대체 깨어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요? 바로 우리의 삶에 좀더 많이 대부분의 비중을 바로 주님에게 두는 것일 겁니다. 우리가 언제나 주님을 향하는 생각이라는 것은 바로 모든 우리의 생활가운데 모든 것을 주님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며 쉽게 이야기하면 예수님을 우리 마음속에 진정으로 모시어 함께 하는 생활을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곧 작은 것 하나라도 바로 예수님과 동행 하는 삶으로 행동하고 결정한다면 아마 우리 삶 가운데 참으로 많이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기도를 하셨는데도 십자가를 지십니다. 바로 땀방울이 핏 방울 되도록 기도를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로마 병정들에게 잡혀 가셨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본다면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예수님이 잡혀 가시는 것을 본다면 조금 실망일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도 삶 가운데 문제가 생겼을 때 돌파를 위해 정말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반대로 흘러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보며 우린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왜 그럴까? 왜 해결이 되지 않을까? 왜 문제가 그대로 일까? 우린 하나 분명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없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로마병정들에게 이끌리어 가실 때 능력이 없으셔서 붙잡혀 가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6장에서 52-54절을 우리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주님은 능력이 없으셔서가 아니라 이전의 예언을 이루려고 하신다는 것 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능력이 없으셔서가 아닙니다. 때로 우리의 문제 앞에 살아계시지 않으셔서 우리를 도와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생각으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나 신경쓰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작은 생각입니다.
54절 말씀처럼 한번도 성경이 틀린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도 한번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의 모든 것들이 주님의 계획이며 주님의 뜻이며 주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우리가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뒤를 돌아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앞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앞으로 펼쳐 질지 모릅니다. 어떠한 일들이 우리 앞에 있을지 우리의 머리로는 도저히 모릅니다.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뒤를 돌아 본다면 주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이끄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시며 우리와 동행하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 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믿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홍해와 다르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 앞에서 믿음으로 한발 내 딛었을 때 요단강이 갈라 졌듯이 우리가 믿음으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는 그 순간 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시간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구미국제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들은 꼭 깨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나 믿음으로 한 발 한 발 내 딛으시는 믿음으로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시어 매일 승리 하시는 삶을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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