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01 구미국제교회 주일설교
출애굽기 13장 17-22절
[인도] “약속하신 길은 반드시 열린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민족은 지금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생쥐의 꼴처럼 보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우선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막다른 길이라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다른 선택이 없는 것입니다. 15년 전 운전을 처음 할 당시 모르는 길을 갈 때 꼭 막다른 곳으로 가곤 합니다. 그리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 나와 원래 목적지로 가는 길을 찾아 갑니다. 그러다 옆 차선에 차들이 빨리 달리면 서툰 운전 실력으로 끼어들지 못해 하염없이 직진만 계속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제가 원치 않았던 곳까지 오게 되고 차들이 없는 틈을 타서 다시 빨리 차를 돌려 돌아 오면서 혼자 어이가 없어 웃곤 했습니다. 하염없이 웃고 나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고 오면서 겪었던 실수를 나누다 보면 다들 초보운전 당시 똑 같은 실수들을 했던 경험들이 있는 것을 알게 되며 위로를 삼았던 기억이 납니다.
운전을 하다가 잘못 든 길은 돌아 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아주 많습니다. 우리 인생에 시간이라는 것과 그리고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무리 노력을 하고 돈을 쓴다고 해도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것들 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은 신중 해야 하며 우린 그때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되돌릴 수 있거나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것은 잘 못 갔을 때 빨리 돌아 와야 합니다. 빨리 우리가 돌아 서지 않으면 더 이상 돌아 올 수 없을지 모르기 때문에 우린 언제나 뒤를 돌아보거나 신중히 선택을 하여 후회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은 선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그들은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빠져 나왔습니다. 조상들은 편한 생활이었고 기근을 피해 왔을지 몰라도 지금의 이스라엘 민족들은 400년 종살이의 종지부를 찍고 나오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상당한 재물 또한 챙겨서 급하게 빠져 나왔는데 그들은 지금 막다른 길로 가고 있습니다. 옆에는 블레셋의 땅이라 어쩔 수 없이 먼 길로 돌아 왔더니 앞에 홍해가 가로 막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스라엘이 선택한 길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입니다. 그런데 지금 앞에 홍해가 있습니다. 옆에는 블레셋이 있고 뒤로 돌아 가자니 애굽인들이 이스라엘민족을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길이라면 억울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지금 이 길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신다고 애굽에 10가지 재앙이나 내리시며 바로를 무릎 꿇게 하신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인데 지금 막혀 아무런 방법이 없는 상황입니다. 꼭 처음부터 목적지가 가나안이 아니라 홍해 앞인 것 같습니다.
우리인생이 바로 이러한 막다른 길에 막혀 멈추고 하염없이 주저앉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우린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요셉을 통해 주신 다시 찾아 오신다고 하신 말씀을 우린 기억하며 주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만 봐라 보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 앞에 놓인 홍해가 갈라 지는 것 같은 주님의 은혜가 바로 우리에게도 열린 다는 것입니다. 그냥 막다른 길이 아니라 주님의 언약이 있는 길은 분명히 막다른 길이 아니라 우리가 뛰어 넘도록 하시는 길이 라는 것을 우린 기억해야 합니다.
우린 오늘 본문을 통해 보여 주시는 이스라엘 민족의 인도하심이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을 보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로 주님은 우리를 주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길로 간다면 아마 빨리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사와 같이 전쟁에 능한 블레셋 사람들의 길로 이스라엘 민족이 과연 들어 갔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저 순순히 지나 가게 해준다고 해도 이스라엘 민족은 아마 분열 되었을지 모릅니다. 우린 시간이 중요하다 생각을 합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빨리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쉬운 방법이나 어렵지 않는 방법이 있으면 그것이 꼭 효율적이라 합니다. 진짜 효율은 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바로 홍해가 가로 막고 있는 길입니다. 블레셋사람들로 겁을 먹고 돌아 갈까 싶어 우리를 인도하신 길이 바로 홍해가 있는 곳입니다.
집에 다와 갈 때 꼭 화장실이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집 앞에서 문을 열기 전에는 꼭 우린 위기감을 느낄 만큼 급하게 식은땀이 나오고 상황이 좋아 지지 않습니다. 문을 급하게 열려고 하니 그 동안 수년간 잊어 본적 없는 대문열쇠가 보이지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집에 아무도 있지 않고 조용합니다. 아무리 불러도 소식이 없습니다. 그때 우린 어떻습니까? 짜증이 폭발하기 직전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오늘 아마 폭발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옆으로 잘못 들어 서면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이 날것이고 돌아가자니 애굽 군대가 뒤를 쫓아 오고 있으며 앞은 홍해가 가로 막고 있습니다. 이것은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이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무도 이스라엘 민족들을 보호하거나 도와 주거나 지켜 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17-18절의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 방법도 갈 수 있는 다른 길도 없었습니다. 자신들을 지켜줄 좋은 무기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도와 줄 수 있는 다른 나라민족도 없는 상황입니다. 바로 이때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에게 원망을 하기 시작합니다. 모세가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올 때의 모습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이 길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길입니다. 그런데 우린 지금 우리의 눈으로 길을 보고 있습니다.
외국을 갔을 때 우린 가이드의 인도를 따라 관광지를 다닙니다. 우리마음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따라 갑니다. 분명히 백화점으로 간다고 했는데 완전 외곽으로 우리가 타는 버스가 나가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우린 그러나 가만히 앉아 있는 것 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면 우린 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중국에서 사역을 할 때 이야기입니다. 소수민족마을로 가던 중 어느 꼬마 아이를 만났습니다. 산속 자기네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아이에게 따라 가도 되냐고 물어본 후 설레는 마음으로 뒤를 졸졸 따라 갔습니다. 처음에는 조금만 가면 나온다는 집이 1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1시간 뒤 꼬마는 또 조금만 가면 나온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1시간 후 우린 그 아이의 집에 도착을 했습니다. 우린 그때 아무것도 모르고 그 아이를 따라 갔습니다. 아니 따라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스스로 갈 수 있었다면 달라 졌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렇게 길을 나섰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믿고 그들은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로 앞에 있는 홍해를 보고는 겁을 먹고 원망을 합니다. 이들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들이 선택한 길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길을 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인도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원망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14장 13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니라”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 주님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좋을 길 빠른 길 적당한 길이 아닌 오직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 주님이 아시는 방법의 길로 인도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길이라면 주님에게 물어 보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우리도 다들 아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주님의 길로 간다면 우리는 당연히 모를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로는 알 수가 없는 길로 인도하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소수민족 꼬마 아이의 뒤를 아무 말도 못하고 쫓은 것처럼 주님의 인도하심은 그저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
요즘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쉽게 지도를 찾아 봅니다. 그런데 위성사진을 보다 보면 아무리 높은 건물이라도 위에서 볼 때는 모두다 같은 높이의 건물인 것입니다.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보실 때 홍해 앞에서 고민하는 이스라엘 민족이나 애굽 군대의 군인들이나 아마 별반 차이를 못 느낄 것 같습니다. 바로 주님의 일하심을 우린 가만히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가만히 그저 하나님의 방법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 것인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가만히 우리의 방법이나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우린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 지니라” 14장 14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연약한 우리들은 가만히 주님의 일하심을 보며 기다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주님의 언약과 동행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린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요셉의 유골을 가져 가고 있습니다. 창세기 50장 25절을 통해 분명히 요셉은 자신의 해골을 가지고 가나안으로 돌아 가라고 하였습니다. 24절에 요셉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땅으로 반드시 돌아 간다고 약속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나의 판단으로 가는 길인지 주님께서 가라시는 땅인지 중요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 판단은 기도와 말씀으로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는 것인데 우린 섣불리 우리가 판단하고 주님께 해결을 요구할 때가 많습니다. 시편 143편 10절에 “주는 나의 하나님이 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은 반드시 주님께서 보여 주시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판단을 주님의 판단으로 여기고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유골을 가지고 갈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유골을 가지고 다시 돌아 가는 그들은 유골을 통해 주님께서 주신 언약을 붙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바로 모세는 주님의 언약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를 부르시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내가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너희를 돌려 보낸다고 하신 말씀처럼 바로 약속을 붙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우린 하나님과의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부여 잡고 살아 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언제나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린 그 말씀을 듣고 언제나 지켜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하기만 하는 것이 아닌 말씀을 가지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 없이 행하는 것이 아닌 주님의 약속이 있는 행함이 바로 우리가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며 무엇을 한다고 합니다. 집을 팔 때도 하나님의 뜻이라 하고 땅투기를 위해 땅을 사면서도 하나님의 뜻이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이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 주십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온 것 같이 우리에게도 분명히 보여 주시는 주님의 말씀은 반드시 붙잡아야 하고 어떠한 것이라도 우린 행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같이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같이 지켜 주십니다. 바로 언제나 우리를 떠나지 아니 하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으로 우리를 인도해 나가신다는 주님의 인도하심이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낮이나 밤이나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을 아시고 그 부분까지 세심하게 도와 주시는 주님이 이심을 우린 알아야 합니다.
22절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또 다른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우린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분명 광야는 어렵고 힘들고 고난이 있고 앞을 알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한 곳입니다. 그런 곳으로 우리는 인도하시는 주님의 말씀인 나를 떠나지 않으신다는 것은 나를 끝까지 포기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길은 언제나 낮처럼 밝지만은 않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새벽길이라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전에 중국에서 사역할 당시 소수민족 마을에서 작은 오해로 도망쳐 나온 일이 있었습니다. 같이 그 곳에서 빠져 나오는 7명은 곧 산 중턱쯤 에서 후레쉬 배터리가 없어 낭패를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린 더 이상 우리가 가지고 갔던 후레쉬가 아닌 희미한 달빛에 의지하여 산을 내려오면서 위험을 모면한 적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후레쉬가 우린 전부다 인줄 알았습니다. 우리고 배터리가 나갈 때 우린 곧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오직 우리 눈에는 후레쉬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후레쉬가 없으니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달이 우리의 가는 길을 비추고 있었다는 것을 우린 후레쉬가 꺼지고야 알았습니다. 우리의 방법이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이고 영원하지 않으며 우리를 끝까지 지켜 주지 못하고 우리가 의지 하지 못하는 것 들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의지를 내려 놓을 때 우리의 방법이 더 이상 없을 때 바로 그때 하나님의 방법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가만히 우리를 위해 일하심을 우린 알 수가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우린 만나야 하고 그 하나님의 약속을 우린 믿고 의지하며 우리의 약속으로 우리가 받아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손에 오늘날의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손에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비추시며 주야로 인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동참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빌립보서 2장 말씀처럼 우린 바로 예수님 안에서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고 요셉의 유골을 들고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의 언약을 들고 홍해가 가로 막혀 있는 길이라도 믿고 그 길로 나갈 수 있는 것 같이 우리도 오늘날 예수그리스도안에서 믿고 나아간다면 분명 주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해 주시며 아무리 막혀 있고 우리의 눈으로는 방법이 없는 문제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행한다면 반드시 홍해가 열린 것 같이 우리의 모든 문제와 가로 막힌 담들이 헐어지고 해결되어 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우린 반드시 언약을 믿고 나아간 이스라엘 민족처럼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서 행하는 우리들이 되어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앞길을 인도하시는 것을 가만히 지켜 보는 은혜가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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