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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7 마가복음 8장 1-10절
슈아이꺼 2013-11-16 추천 0 댓글 0 조회 392

2013-11-17                    구미국제교회                 주일설교

 

마가복음 8 1-10

[망각] “난 동참할 뿐이고 주님께서 일하신다.”

 

1. 사천명을 먹이시는 예수님..

먼지가 날리는 땅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오늘 따라 엄청나게 몰려온 무리를 향해 그 자리에 조용히 앉으라 하십니다. 이들은 이곳에 사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방인이자만 예수님의 귀한 복음을 듣기 위해 온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이방인들을 향해 주님은 떡 일곱 개를 가지고 하늘을 향해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사천명은 엄청나게 기대하며 오늘 예수님의 기도 후 있을 일들을 기대를 합니다. 그리고 떡 일곱 개를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있는 사천명에게 나누어 주어라 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작은 물고기 두세 마리를 가지고 다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떼어 나누어 주라 하십니다. 일곱 개의 떡과 두세 마리의 작은 물고기를 가지고 사흘 동안 예수님의 달고 맛있는 귀한 말씀을 듣고 있었던 사천명의 무리들에게 영의 배고픔과 함께 육의 배고픔까지 배불리 채우시는 것을 보며 예수님의 자상하신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한 것들을 우리의 힘든 점들을 우리의 어려운 것들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바로 이들이 멀리서 온 것을 아시는 것처럼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린 오늘날 주님을 모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주님의 이적을 보고도 잊어 버리고 주님께 다시 이적을 구하거나 아니면 주님이 이적을 행하시는 분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고도 지금 다시 사천명을 먹이는 것에 다시 불가능을 이야기 합니다. 방법이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바로 나의 모습이고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보일 모습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떡 일곱 개로 몇 명을 먹이 십니까? 바로 사천명입니다. 물론 남자만 사천명이며 여자와 아이들까지 하면 더 많습니다. 그렇게 많은 무리들을 먹이신 것은 바로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다는 것입니다.

 

2. 떡과 물고기를 먹기 전에 말씀을 먹었다.

오늘 우린 여기서 중요한 것을 발견합니다. 바로 사천명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밥을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오늘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배고프다고 다시 돌아가지 못 할 만큼 멀리서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넓은 지역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서 온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사흘 동안이나 들었습니다. 배가 주린데도 허기가 지는 데도 가지고 온 도시락이 다 떨어져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천명이 있는 만큼 그곳은 마을에서 많이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바로 광야에서 많은 무리들이 모여 예수님의 꿀보다 더 달고 오묘한 그 말씀을 들으며 그곳에서 사흘 동안이나 그곳에 앉아 있습니다. 잠시 집에 돌아 갔다고 올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앞에서 큰 소리로 말씀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귀한 복음을 혹시나 놓칠까 싶어 모두다 조용히 앉아 듣고 있습니다. 집중에 집중을 더하고 모든 신경은 예수님의 말씀 선포에 있습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은 작은 예수님의 그 음성이 그저 신기하고 살짝 들리는 만큼 더 은혜로 들렸을 것입니다. 너무 감동입니다. 한마디 하실 때마다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때론 회개가 터져 나오고 그리고 도전이 되며 힘이 나며 상처의 회복이 나타나며 생명 되신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나의 마음에 들어와 있는 설교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흘을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배가 고픕니다. 그러나 이 광야에서 마을로 가기가 너무 멀고 너무 지쳤습니다. 걸을 힘도 없고 돈도 없고 집으로 돌아가 주린 배를 채우려고 하니 자신이 없습니다. 나의 영은 충만해 지고 내영은 살찌고 건강해 지고 회복 되어 졌습니다. 바로 나의 영은 살아 난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육체는 너무 지쳤습니다. 배가 고프고 일어설 힘도 없습니다. 이제 집으로 갈려니 건강한 내영과 달리 나의 육체는 쇠약해 졌습니다. 난감함을 느낍니다.

 

오늘 그들 사천명은 바로 자신의 육체적인 배부름이나 부족을 채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인 바로 내영의 주린 배를 채우러 온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바로 죽어 가고 약해져 있고 살아가는 동안 알지 못해 어려웠던 인생의 문제들과 상처들을 받으며 아프기만 했던 마음과 영적 목마름을 위해 모인 것입니다.

바로 그들은 물고기와 떡이 먼저가 아니라 예수님의 귀한 말씀이 먼저였던 자들입니다. 앞서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그들은 쉬러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서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자들이었습니다. 바로 앞서 오병이어 이적 때의 오천명이나 지금의 사천명이나 모두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달려오고 멀리서 온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아들의 손을 잡고 딸아이의 손을 잡고 부인과 함께 기대하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예수님의 오심을 전하며 빨리 가지 않으면 앞자리에 가지 못한다고 외치며 모두 기대하며 웃는 얼굴로 마을 사람들이 일하던 것을 그대로 내려놓고 혹시 늦을까 싶어 사모하는 마음으로 떨리는 가슴을 안고 왔을 것 입니다.

 

그런데 우린 오늘 사천명이 떡을 몇 개씩 나누어 먹었을까, 물고기를 몇 마리씩 나누어 주었을까, 그리고 물고기와 떡이 맛있었을까를 생각하기에 바쁘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들에게 무슨 말씀으로 영혼의 배를 채워 주셨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먹은 떡이 어느 정도 크기였을까를 생각하고 어떤 부분에 감동을 받았을까가 아니라 물고기는 어떤 물고기 였을까에만 생각이 멈춰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의 사역을 제한하면은 안됩니다. 그저 나의 배고픔과 나의 음탕하고 나의 정욕과 나의 욕심과 나의 계획의 완성과 나의 명예와 내 사업의 성공을 위해 예수님의 사역을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린 예수님의 귀한 말씀을 먼저 구하고 먼저 받고 먼저 말씀에 살아 가는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린 무엇을 먼저 구하여야 합니까? 바로 마태복음 6 33절 말씀처럼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바로 우리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고 구하는 것은 어리석고 소모적인 걱정일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마태복음 6 32절을 통해 이미 알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가운데 3절에서도 예수님께서 이미 그들이 멀리서 왔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처럼 우리가 구할 것과 우리가 필요할 것은 바로 이러한 물질적인 것들이 아니라 바로 영적인 것들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우린 알아야 합니다.

 

3. 둔한 제자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부쩍 거리는 광야를 향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밥을 먹여야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흘이나 열심을 다하여 말씀을 가르치신 아주 은혜로운 절정의 순간 이었습니다. 어딜 가나 행사의 말미는 가시지 않은 흥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쉬움에 잠겨 있을 만큼 기분이 좋은 행사는 아주 들뜨게 합니다. 지금이 아마 그런 순간일 것입니다. 아주 은혜롭고 귀한 말씀들을 듣고 너무 만족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엄청나게 몰려온 무리들을 향해 배를 채워주자 하십니다.

좋은 분위기 가운데 제자들이 찬물을 끼얹습니다. 광야에서 어떻게 떡을 구해 배를 부르게 할 수 있느냐며 난감해 합니다. 이때 난감한 분은 예수님입니다. 지금까지 가르치고 지금까지 보여 준 것을 제자들이 또 잊어 버린 것 입니다. 오늘 보다 더 많은 오천명을 먹이셨던 그날의 이적을 제자들은 잊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 여기 제자들을 보며 우린 지금의 우리를 발견합니다. 분명히 똑똑히 보았지만 돌아 서면 잊어버리고 믿지 못하고 하는 것이 꼭 기드온 같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우리 딸은 바쁜 아침마다 알림장을 가져와 싸인을 해달라고 합니다. 아침에 아이들 옷 입히기 바쁘고 밥 먹이기 바쁜 아침 전쟁 중에 싸인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 언제나 아침이 아닌 미리 전날 저녁에 알림장을 가져오라 합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 되면 또 알림장을 가져와 살짝 내밀어 놓습니다.

우리가 바로 약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오천명을 먹이실 때 그 떡을 떼어 나누는 사역에 동참했던 제자들이었고 다 먹고 남은 떡과 물고기를 바구니에 담았던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병이어 기적의 기억은 없어지고 다시 어리석은 인간적인 방법을 찾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며 인간의 연약을 모습을 다시 발견합니다.

이렇게 둔한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은 다시 그들에게 사천명을 먹이시는 사역에 다시 동참 시키십니다. 둔한 제자들을 부르시고 무리들에게는 땅에 앉게 하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십니다.

아무리 둔하고 믿음이 부족한 자들이라도 예수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시고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돌려 보내거나 무시하지 않으시고 다시 한번 귀한고 신기한 이적이 일어나는 사역에 동참을 시키시는 것을 우린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린 바로 희망이 보입니다. 둔하고 어리석은 우리지만 그런 우리도 언제나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주시고 부족하지만 우리를 다시 사용하여 주신다는 것을 우린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사천명이 무리들도 이방인입니다. 이전 오천명은 모두다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유대인들 오천명을 불쌍히 여기시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12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여기서 12바구니는 바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유대인들을 향하신 천국잔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천국잔치의 손님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우린 그래서 혹시 그들만 사랑하시나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은 역시 무한하시고 넓으십니다. 오천명을 먹이시고 벳새다에서 게네사렛으로 그리고 두로지방에서 시돈을 지나 데가볼리로 가셔서 갈릴리 호수까지 긴 여정 가운데 돌아 다시 오신 이 곳 이방 지역이며 인적이 드문 광야에서 사천명의 이방인들에게도 천국잔치를 열어 배불리 먹이 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며 우린 바로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사랑하시는 것도 같으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것도 같은 것을 말씀을 통해 보여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린 공의의 하나님의 사랑을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4. 예수는 유대인의 왕? 예수는 유대인의 메시아? 예수는 주!

예수님께서 사천명을 먹이시고 흩어 보내십니다. 꿀송이 같이 달콤한 말씀으로 영혼을 배불리 먹이시고 육체의 주린 배까지 불쌍히 여기시고 배불리 먹이시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제 많은 무리들을 돌려 보내십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오병이어 이적 후에 예수님은 어떠셨습니까? 아주 분주 하십니다. 배불리 먹이신 오천명 그들을 재촉하여 돌려 보내 셨습니다. 바로 오병이어 이적 이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로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들의 왕으로 강제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 이방인들은 유대인들과 달리 평안히 돌아 갑니다. 바로 유대인 그들은 오병이어 이적에서 자신들의 배를 불린 것처럼 자신들을 로마의 통치에서 구원할 유대인의 메시아로 여겼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신들의 인간적 왕으로 여기며 진짜 왕으로 삼으려 하였다는 것을 보며 우리 들은 언제나 우리의 육체적 정욕에 많이 약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언제나 연약한 우리들은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넘어 지고 나의 육체적인 것들을 먼저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방인들인 사천명의 우리들은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인간의 왕이 아닌 우리를 구원할 왕으로 믿은 것입니다. 우리의 오늘 믿음은 이렇게 있는 그대로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귀하신 뜻은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오늘 우린 오천명을 먹이신 것과 사천명을 먹이신 것을 보며 믿음이 부족하면 오늘 본문에 나온 제자들처럼 분명히 예수님의 이적을 체험 했지만 다시 그 상황에서 생각지 못하는 우둔한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영적으로 주의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전에 나온 오천명 보다 줄어든 사천명이고 오병이어때보다 재료도 많은 칠병이삼어인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상황 비슷한 예수님의 말씀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제자들을 보며 우린 혹시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린 나의 필요를 채울 나만의 왕 예수님이 아니라 나를 어두운 이 땅에서 구원하실 예수님을 발견하고 만나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것을 아는 데도 의심하거나 주님의 일하심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모습은 우린 버려야 합니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하신 시편 34 10절 말씀처럼 우린 이 땅에서 우리의 채우는 것을 찾기 보다 주님의 말씀으로 채우기를 바라고 주님의 일하시는 방법에서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망각으로 주님의 방법을 제한하거나 의심하고 나의 기준에서 판단하는 어리석은 모습이 아닌 언제나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하신 요한 복음의 말씀처럼 나의 방법 나의 한계가 아닌 하나님의 한계 하나님의 말씀의 도우심으로 언제나 풍성한 은혜의 삶을 살아 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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