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13 주일설교 구미국제교회
마가복음 3장 20-21절
[내자리] 교회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 지금의 내자리..
오늘 우리는 관계를 아주 중요시 합니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면 꼭 물어 봅니다. 고향이 어디인지 그리고 나이와 학교가 어디인지 누구를 아는지 등등 우리는 여러 가지를 물어 보며 공통된 관계성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공통으로 아는 것이 것이나 같은 지방 출신이거나 상대방과 같이 아는 사람이 있으면 신기해 하며 반가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더 친해 지고 관계를 더 튼튼히 하려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관계성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관계에 있거나 비슷한 부류에 속하면 우리는 서로를 더 친하게 생각하고 실제로 더 큰 애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이 바로 관계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보려 합니다. 내가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 나는 무리에 있는지 아니면 서기관과 예수의 친족들과 같은지 나의 자리를 다시 한번 뒤돌아 보고 각자의 자리를 찾기를 바랍니다.
바로 내 자리를 찾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1. 무리들 속에 내가 있어야 한다.
20절에 보면 집에 들어 가시고 바로 무리와 함께 모여 가르치십니다. 여기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식사를 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많이 바쁘십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회당이나 야외에서 가르치시는 것은 많은 무리들입니다. 바로 누구든지 모이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가르치시는 것은 바로 좀더 집중해서 가르치시기 위해 모인 자들을 위해 모여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바로 좀더 집중해서 가르치시는 것을 말합니다.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바로 이곳 집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곳 교회 안에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방황하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교회안과 밖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무리와 교회 안에만 있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집안에 거하는 구별된 사람이기를 원하고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거하며 있는 무리들 속에 지금 내가 함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 무리들 속에 내가 없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어 제자들로 모여 있는 그들 가운데 내가 속하여 예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로 거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선생님과 친하지 않은 아이들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선생님을 좋아하든 아니든 선생님과 친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관계성은 바로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친해 지려고 하나 내가 맘에 안 들어 더 이상 다가가지 않는다면 관계성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자리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리에 있어야 예수님과의 관계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친족들의 자리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바로 나의 가족과 나의 친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한국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속담을 오늘 예수님의 친족들이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미쳤다고 잡으러 온 것인데 왜 미쳤다는 것일까요? 바로 본인들이 볼 때 귀신을 쫓아내고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것이 친족들이 볼 때에는 미쳤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해는 갑니다. 자신들이 잘 알고 함께 지내던 자신들의 조카가 어느 날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신기한 이적들을 행하고 회당에서 능숙하게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는 것을 볼 때 놀라는 것은 당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 당시 예수님의 친척이 아닌 것이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이 미쳤다는 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이 어찌 미친 것인지 모릅니다. 어떻게 미치면 병든 자를 고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미치면 회당에서 능숙하게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실까요? 정말 22절에 나오는 서기관들의 말처럼 “바알세불”의 귀신이 들린 것일까요?
전 여기서 정말 궁금합니다. 예수님도 못 믿는 사람들이 “바알세불”은 이들이 어떻게 믿었을까요? 출애굽 당시 하나님의 10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는 것과 불기둥과 구름기둥, 아침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는 것을 보면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위기가 되면 우상을 만들어 절을 했습니다. 본인들이 분명 똑똑히 눈으로 본 증거들이
있는데도 위기순간에는 잊어 버리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지만 어떻게 눈앞에서 귀신을 내쫓고 병자를 고치고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못 믿고 오히려 귀신이 들렸다고 하는 그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바알세불은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이야기 하는지 더 궁금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친족의 자리에 있지 않기를 노력해야 합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잘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러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잡으러 오는 친족들 속에 우리가 거하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미쳤다고 합니다. 예수님 사람들에게 돈을 뺏은 것도 아니고 옷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친 것인데 미쳤다고 하고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내쫓은 것인데 미쳤다고 합니다. 미친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중풍 걸려 걷지도 못하고 침상에 달려 내려온 병자에게 예수님은 일어나 침상을 들고 가라고 한 것이 미쳤다고 합니다. “바알세불”이 들린 것이라고 합니다. 귀신들린 자들에게 호통하시며 귀신을 내쫓으시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히려 귀신들린 것이 아니냐 합니다. 바로 예수님을 보며 사람들의 하는 말입니다.
이적이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 인데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합니다.
오늘 2000년 이 지난 지금 보지 못한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데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그들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3. 지금 내 자리가 어디인가?
지금 이순간 내 자리는 어디인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무리들 밖에 있는 예수님의 친족들 자리에 서있는지 아니면 예수님과 함께 집안에 거하고 있는 무리들 가운데 있는지 우리 자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각자가 지금 서있는 자리가 자신을 만듭니다. 교회에 있지만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배우는 자리인지 아니면 예수님이 미쳤는지 보려고 온 자리인지 지금 “내 자리”가 어디인지 주위를 둘러보며 지금 현재 “내 자리”를 잘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혹시나 다른 자리에 있다면 다시 주님과 함께 하는 자리로 나와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는
무리 속에 거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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