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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2 출애굽기 1:1 – 2:23
슈아이꺼 2013-05-15 추천 0 댓글 0 조회 227

2013-05-12         구미중국인교회주일설교

 

출애굽기 1:1 ? 2:23

"고통속에서 하나님의 이끄심과 모세의 출현"
 

오늘부터 출애굽기를 시작합니다. 출애굽기의 시작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처음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오던 창세기 후반부와는 아주 다른 대조적인 상황이 펼쳐 집니다. 총리대신의 가족으로 온 이스라엘민족은 출애굽의 시작과 함께 종으로 신분이 탈바꿈 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 세대가 흘러 요셉의 시대 사람들은 다 죽고 이제 그들의 자손들의 시대가 왔습니다. 그리고 7절에 이스라엘 민족은 아마도 엄청난 인구를 가진 듯 합니다. 애굽이라는 한 대국을 긴장하게 할 정도의 인구비례를 가진 민족이 되며 이스라엘 민족의 어려움은 시작되었습니다. 새롭게 바뀐 왕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긴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점점 많아 지는 인구를 보며 두려움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민과 연구 끝에 만든 애굽왕 바로의 정책은 이스라엘 민족을 종으로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감독자를 세워 힘든 건축 일과 여러 가지 힘든 고역에 동원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은 더 이상 총리대신의 가족인 신분이 아닌 한나라에 종이 된 민족이 되었습니다. 종이라는 것은 어떠한 의견도 없이 타의적으로 남의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즉 자유가 없어진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신분은 최하위라기 보다 그냥 신분 자체가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주 처참한 모습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애굽은 고통과 고난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확대 하였습니다. 그때 마다 힘들어 하며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서 애굽인들은 아마도 편안함을 찾을려고 하였을 겁입니다.

 

애굽인들은 두려움 앞에서 힘으로 자신들의 권력이나 권위로 이겨낼려고 합니다. 억압과 압제는 어떠한 곳에서도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녀나 다른 주위 사람들과 갈등 가운데나 관계 가운데 이러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 뜻은 바로 인간적인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힘과 권력 그리고 무시의 태도는 바로 세상적인 방법이고 제일 비열한 방법입니다. 그다지 성공적인 방법도 아닙니다.

12절에 확대 받을수록 더욱 번식하고 창성했다고 나옵니다. 억압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우리는 억압이 아니라 사랑과 이해 그리고 협력이 필요한 존재 입니다. 왜냐면 바로 존엄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들이 존엄을 가진 인간을 물리적인 힘과 보이지 않는 권력이나 압력으로 다스리려 한다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방법입니다. 즉 틀린 방법이며 결과는 아주 불 보듯 뻔한 결과를 보여줄 것입니다.

 

억압과 확대에도 해결이 되지 않자 애굽왕 바로는 이제 영아살해라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 뜻은 자연스럽게 민족적 말살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남자의 성비를 무너트리는 것은 민족의 혈통을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파를 불러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명령을 합니다. 마지막 방법은 살인이라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바로는 여기서 더 이상 돌아 올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태어난 아이를 죽인다는 것은 해산의 고통을 무의미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산파들이 바로의 명령에 불복종하자 모든 히브리아이들을 강에 던지라고 명령을 합니다.

바로왕은 하나님께 정면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오직 생명은 하나님만이 관할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 누구도 존엄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는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 할 때 하나님의 심판이 따를 것입니다. 10가지 재앙으로 애굽인들의 장자의 죽음으로 그 고통을 알게 하십니다.

 

바로의 히브리모든 사내아이를 강에 던지라는 명령에 히브리 사람 중 한 레위지파 부부에게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몰래 출산하여 몰래 키우는 것에 한계가 왔습니다. 아이가 성장 할수록 더 이상 키울 수 없는 상황에 오자 택한 방법이 역청을 바라 물이 들어오지 않는 갈대 상자에 아이를 넣어 강가에 띄어 보내었습니다. 그렇게 물가에 나와 있던 바로의 딸인 공주에게 건져지게 됩니다. 그리고 애굽왕 바로의 딸인 공주는 갈대 상자에서 건진 아이를 모세라 하고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모세의 뜻은 물에서 건져 내었다라는 뜻으로 구원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아이를 담아 띄어 보낼 갈대상자를 만들 때 모세어머니의 마음은 아마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정성스럽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바로의 공주의 시선을 끌기에 아주 좋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시선을 끌도록 만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자라기 시작합니다. 모세는 애굽인의 혈통은 아니지만 애굽왕족의 교육을 받고 애굽 예절과 문화를 가졌을 것 입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자신이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은 듯합니다. 그는 히브리 사람을 괴롭히는 애굽인을 쳐 죽이게 됩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애굽의 왕자로 자라란 모세를 히브리 사람으로 봐주지를 않습니다. 14절에 모세에게 반감과 모세의 살인 현장을 목격목격 된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모세는 미디안 땅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거기서 모세는 결혼을 하고 애굽의 왕자에서 양을 치는 목동의 신분으로 살아 갑니다.

 

모세는 왕자였습니다. 왕자인 모세가 사람을 죽인다고 당시의 애굽인들 관점에서 큰 죄는 아니었을 것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에 정치적인 부분에서 히브리 사람인 모세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정치적인 부분과 여러 가지 상황에 맞춰 모세는 도망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왕자에서 도망자로 모세는 정처 없는 방랑자가 되었습니다. 목적지 없는 여행은 즐거움이 없는 여행입니다. 모세는 그렇게 즐거움이 없는 가운데 미디안이라는 땅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모세의 방랑자 인생은 여기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왕자 모세는 방랑자로 자신도 모르는 순간 한 순간에 신분이 바뀌어 집니다. 즉 우리의 인생도 이렇게 앞길을 모릅니다. 지금의 우리생활이 계속 지속된다는 생각은 아마도 어리석은 듯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생각한 이상 우리는 앞으로 엄청난 고난과 고통, 그리고 인생의 큰 변화들이 있을 겁니다. 그때 마다 우리는 포기로 주저 앉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따라 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된 우리는 앞으로 수 많은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출애굽부터 광야생활과 가나안 입성까지.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보지 않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우리가 좀더 크게 반응 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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