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21 구미중국인교회 주일설교
사도행전 3:1-10
“성전 문 앞이 아니라 문 안에서…”
앉은뱅이가 앉은 곳은 바로 성전 문 앞입니다. 문 앞에 앉은 이유는 구걸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냥 회당에 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해야 먹고 사니 회당 문 앞에 사람들이 그를 문 앞에 까지만 데려다 놓은 것입니다. 혹시 오늘 본문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다행이다. 혹시 회당 문 앞에 아니라. 시장 통이나 다른 지하철 입구가 아니라 회당 문 앞이라 다행이다. 이 당시 유대교의 문화는 기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 시간에는 회당으로 가서 기도하는 것이 그 당시 문화였습니다. 회당이 있고 회당에는 랍비가 성경을 읽고 해석해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몇 차례 있는 기도 시간에는 사람들이 복잡하게 다닐 정도로 많았습니다. 아마 그래서 회당 앞에서 구걸을 한 듯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며 저는 심히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본문은 “앉은뱅이가 있는데 그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성전 안에 두는 지라.”가 맞는 것 같은데.. 성전 문 앞에 두는 것입니다. 왜 하필 앞에다 두었지? 안에다 두고 앉은뱅이가 해야 할 것은 기도이며 예배인데 그는 그저 예배의 목적이 아닌 구걸의 목적으로 교회에 온 것입니다. 예배의 목적이 아니면 사람들을 보여 주는 듯 합니다. 예배가 목적이 아니고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바로 몸은 교회에 있지만 마음은 교회 문 앞에서 들어 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따로 있는 사람들은 바로 교회에 와서 예배를 함께 드리는 것 같지만 문 앞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의 옆자리에 자리 잡은 것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몸은 여기 교회에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보고 있으니 저와 함께 여기에 있는 것은 맞는데 혹시 성도님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지금 여기에 함께 있습니다. 아니면 빈 껍데기만 여기에 있는지 우리가 자신을 한번 영적으로 피드백을 해보아야 합니다. 지금 생각이 어디에 많이 집중되어 있습니까? 오늘 저녁에 볼 “최고다 이순신”? 고두심하고 이미숙이 오늘은 만날까? 조정석이 아이유랑 마음이 통할까?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하십니까? 오늘 저녁에 남자 친구랑 어디에 갈까? 무엇을 먹을까? 무슨 영화 볼까? 이번 주부터 중간고사인데 어쩌지? 빨리 집에 가서 공부 해야지. 지금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배하는 이곳에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섭섭 하실지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두번째로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을 향해 구걸합니다. 아마 큰소리로 했을 겁니다. “한 푼만 주세요~?” 하며 큰소리로 소리 질러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불쌍한 표정을 지었을 까요? 우리도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구해야 합니다. 들어 가려 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구걸 하였다는 그 앉은뱅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구걸하였습니다. 아마 몇 만 명에게 구걸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구걸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앉은뱅이는 여전히 구걸하는 신세였습니다. 아무런 삶의 변화가 없이 아무런 기쁨과 소망 없이 아무런 인생의 의미가 없이 사는 그대로 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며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구걸 할 때 바로 모든 것이 바뀌는 것입니다. 만약 그때에 베드로와 요한이 동전 500원짜리 하나 주며 “고생 많으십니다.”라며 위로하고 가버렸다면 오늘의 이 본문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향해 돈은 주지 않고 보라고 합니다. 주목하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금도 없고 은도 없다고 하며 대신에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합니다. 그 말과 함께 오른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황당하고 불렀습니다. 돈을 줘야 하는데 오른 손을 잡고 일어나라 합니다. 그러니깐 오늘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이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은 것입니다. 성전 앞에서 구걸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은 것입니다.
8절에 그는 걷기도하고 뛰기도 하며 성전으로 들어 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당연하겠지만 그는 처음 걸어 보았습니다.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우며 기뻤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근 더 이상 앉은뱅이가 아닙니다. 이 사람은 이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가 구해야 하는 대상은 바로 예수님 입니다. 우리가 의지 하고 우리가 찾아야 하는 대상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분은 바로 오직 예수님 입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구하였지만 아무도 그를 구원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매 기도시간마다 성전 앞에 있었지만 그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뒷 구절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며 이 두 사도의 힘과 능력이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바로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돈을 주시지는 않으시지만 우리에게 확신과 약속을 주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언약된 백성으로 삼으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우리를 구원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를 우리의 마음을 찾아서 지금 우리 몸과 함께 이곳 예배당에 바로 주님께 예배하는 이곳에 함께 나아와 예배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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