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청도에서 사역 중이신 어느 한국 선교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연히 모르는 분이었고 뜬금없는 전화에 당황했다. 요지는 선교사님 가정교회의 리더로 활동 중인 A형제가 현지 한국기업체에 근무 중인데 이번에 한국에 단기파견을 온다는 것이다. 본사가 구미이기에 아마도 구미로 갈 것 같으니 혹시 가게 되면 우리교회에 보내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너무 반갑고 기뻤다. 중국에서 복음을 듣고 신앙이 좋은 리더급의 형제가 한국으로 오는데 그것도 우리 교회로 온다는 소식은 아직 현지인 리더가 없던 우리 공동체에 정말 단비 같았다. 그리고 그 A형제가 얼마 뒤 오게 되었고 함께 예배를 드리는 첫날 아주 기쁘고 반가운 분위기에서 교회 형제자매들에게 소개했다. 그리고 함께 찬양도 하고 점심 식사도 함께 맛있게 먹고 돌아갔다.
일주일 뒤 기쁜 마음으로 A형제를 태우기 위해 기숙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약속시간 보다 늦게 나오는 A형제의 발걸음이 아무렇지 않은 듯 설렁설렁 걸어오는 것이었다. 조수석 차문 앞에 서서 창문을 두드리고는 잠시만 기다리라 하더니 근처 슈퍼마켓으로 들어갔다. 나올 때 빵을 하나사서 입에 물면서 차문을 열고 천천히 올라타는 모습에 난 상당히 당황했다. 당시 차에는 나를 제외하고도 다른 중국 형제가 2명이 더 있었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늦게 나오면서 여러 명이 타고 있는 차에 본인 빵만 사서 입에 물고 타는 그의 행동이 적잖이 마음에 걸렸다.
그 날 예배 때 자세도 상당히 좋지 않았으며 표정도 많이 차가웠다. 지난주와 다르게 보이는 A형제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침착하기위해 더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한주가 더 지나고 이제는 다르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A형제의 기숙사 앞에 기다리고 있는데 변함없이 약속 시간보다 늦고 천천히 걸어오는 발걸음과 자신의 음식만 슈퍼마켓에서 사오는 모습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러한 상황에 분노하는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차에 있던 다른 중국형제들도 상당히 당황하며 A형제와 대화가 단절되어 버렸다. 난 조심스럽게 물어 보려다 혹여나 물어보는 가운데 상처나 오해가 생길까 싶어 오랜 시간 A형제와 대화를 하며 속마음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실수를 한 것은 없는지, 아니면 우리교회가 인지하지 못하는 불쾌감을 준 일은 없는지, 도대체 첫날과 달라진 모습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오랜 대화 속에서 난 그 형제의 속마음이 드러난 반복되는 단어를 통해 형제의 행동을 짐작할 수 있었다. A형제는 자신이 예상한 우리교회가 너무나 초라해 보였고 당시 목사가 아닌 내가 교회 담임이라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었다. 중국에 있던 한국인 선교사님은 목사이며 가정교회 장소의 규모도 어느 정도 큰 편인이었단다. 한국에 오면 좀 더 크고 화려하고 음향시스템이 좋은 교회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정작 와보니 마이크도 없는 가정집 같이 생긴 투룸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에 놀랐단다. 더 중요한 것은 목사가 아닌 사람이 설교하는 것에 화가 난 것이다. 자신도 중국 가정교회에서 설교하며 예배를 인도했었다는 말을 여러 번 언급하던 A형제의 대화에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 이후로 교회를 목양하는 나를 비롯한 교회 구성원들에게 점점 무시하는 태도는 계속되었고 예배시간에 상당히 불량한 자세와 표정은 A형제가 우리교회에 머물렀던 6개월이 가장 크게 힘든 시련의 시간이었다. 그 형제가 돌아가고 난 뒤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혹시 반대로 우리교회 성도가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서 다른 이들에게 A형제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아주 끔찍할 것이다. 또한 중국 고향 도시로 돌아가 현지 가정교회에 방문하고 난 뒤 A형제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나는 아주 실패한 목회자라고 생각이 들었다. 난 두려웠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든 착한 사람 코스프레가 아닌 진정한 바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성경에서 찾아가기 시작했고 진정한 선교가 무엇인지 난 왜 선교를 하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단순한 구원의 복음에서 구원받은 자의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동은 어때야 하는지,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무의미한지에 대해서 교회 공동체와 함께 고민하고 나누기 시작하며 조금씩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고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먼저 교회 공동체가 그 삶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난 뒤 우린 그 자리로 다른 이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는 것이라는 것을 함께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리스도인의 모습,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삶의 자리로 함께 살아갈 친구들을 초대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간다. 나와 언어, 사상, 이념, 사회적 문화가 다르지만 그리스도인의 자리, 나로 인해 기쁨과 사랑이 흘러가는 자리로 난 그들을 초대할 것이다.
글쓴이 : 권주은(구미국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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