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거의 끝나가며 늦더위가 기승할 때 뜬 금 없는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어눌한 말투로 국제교회인지 문의하는 것을 보니 아직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친구였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 보니 캄보디아에서 한 달 전에 구미로 왔고 아파트를 짓는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며 함께 캄보디아에서 온 친구들과 작은 원룸을 기숙사로 사용하며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목소리가 참으로 부드러웠다. 주일 예배 시작 전 불쑥 들어온 두 명의 낯선 친구들이 인사를 하며 자신이 이틀 전 전화를 했었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캄보디아에서 온 두 명의 친구는 이름이 '낙'과 '라'였고 캄보디아에 아내와 자녀를 두고 온 것이다. 가족을 생각하며 공사장의 힘든 시간들을 이겨낸다며 떠듬떠듬 입을 열어 자신을 소개했다. 늦더위에 자전거를 타고 온 두 명의 친구는 계속 교회를 나왔고 어느덧 초가을로 접어 들었다. 그런데 점점 늦가을이 지나고 겨울의 초입이 다되어 가는데 두 친구의 옷차림과 신발은 계속 여름이었다. 춥지 않은지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추운 날씨라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할지 모른다는 대답에 웃음이 났다. 겨울옷을 구하여 처음 만나보는 겨울이 무섭기 보다 따뜻한 시간으로 기억이 되도록 하나씩 알려주었다. 두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순수하고 따뜻한 미소를 가진 두 친구는 만나기 힘든 아주 착한 친구들이었고 선한마음을 가진 천사들 같았다. 일 년의 시간이 지나며 두 친구가 일하고 있는 아파트공사가 거의 마무리 되었고 다른 지역의 아파트현장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 어느 친구들보다도 아쉬운 이별의 시간이었다. 전국 많은 곳으로 일자리를 구하여 옮겨 다닌 두 친구는 힘든 공사장의 일자리를 가족들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참아 내고 있었다. 그러나 가끔 통화를 할 때 마다 외로운 마음이 점점 더 커져 가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아내와 난 두 친구를 너무 안타까워했다. 당시 춘천에 일하고 있는 곳으로 찾아 가려고 연락을 하니 며칠 뒤 부산으로 옮기기 때문에 이사 후에 부산에서 만나자는 약속 후 전화를 끊고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가을에 접어들 던 그날도 밤늦게 뜬 금 없이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얼마 전 부산으로 옮겨간 캄보디아 두 친구 중 '라'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아무런 말없이 흐느끼는 목소리가 수화기 넘어 들려왔다. 두렵고 떨리는 목소리로 무겁게 한마디를 뱉어냈는데 그 말이 수화기 넘어 귀로 흘러 들어 올 때 바위가 굴러 들어와 박히는 듯 했다.
흐느끼며 서툰 한국어로 "낙 죽었어.., 형~ 오늘 낙, 죽었어.."
"뭐라구요? 다시 천천히 말해봐요.."
다시 들려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우리가 잘 못들은 것이 아니었다. 캄보디아 친구 낙은 부산의 지하철 공사 구간에서 사늘한 시신이 되었다. 사고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감독자 없이 굴삭기와 락이 그날 어두운 지하 깊은 곳 공사현장에서 작업을 했다. 굴삭기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땅에 박힌 철근을 자르는 작업을 굴삭기 옆에서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감독자가 없다보니 쪼그려 앉아 철근을 자르고 있던 캄보디아 친구 낙을 굴삭기가 후진하며 보지 못하고 덮쳐 버렸다. 어두운 지하의 공사 현장에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무섭게 작업하는 굴삭기가 뒤에서 부터 덮쳐 버릴 때 낙은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웠을까? 낙을 덮쳐 버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굴삭기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계속하여 일을 하였고 어느 순간 부터 철근을 자르던 낙이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땅속에 짓눌려 사늘한 시신으로 발견 된 것이다. 마음이 아팠다. 그 어두운 곳에서 시끄러운 굴삭기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자신을 짓누를 때 얼마나 괴로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고통에 소리 지르며 괴로워하던 낙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가족들을 위해 추운 겨울에도 더운 여름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며 어린 두 자녀와 아내를 만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견뎌내던 낙은 어두운 지하철 공사현장에서 사늘한 시신이 되어 가족의 품으로 갔다. 부산의 장례식장이 아니라 어느 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한국에 지인이 없기 때문에 어떤 장례절차도 없었다. 열심히 일한 이곳 한국에서 죽어서도 외롭고 쓸쓸하게 그 시간을 보내고 고국으로 간 것이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미안했다. 큰 소리로 하나님께 따졌다. 왜 하필 낙을 데리고 가셨냐고, 착하고 순수했고 똑똑하고 가족을 위해 고생만한 젊은 낙을 왜 데리고 가셨냐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과로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고함지르던 그 시간은 어느덧 흘러 이제 반년이 지났다. 지금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미안하다. 무엇이 미안하냐고 물어본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겠다. 무엇이 그렇게 미안한지, 그냥 모든 것이 미안하다. 다시는 이곳에서 외롭게 살다가 죽어가는 이주민 친구들이 없도록, 외롭게 살다가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도록,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 오늘도 골목을 걸어 다니며 이주민 친구들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리고 누구든 만나면 웃으며 인사를 건넬 것이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글쓴이 : 권주은(구미국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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