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1장
2절
1장 2절 주께서 유다왕 여호와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창고에 두니라.
난 2절에서 조금 놀랐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그릇을 좋아하나? 외국 아주머니들처럼 그릇을 수집하나 하며 잠시 멍했었지만 그 뒷 구절이 본 성경 구절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그릇은 아마 식기로 사용되던 그릇은 아닌듯하다. 왜냐면 5장에 보면 벨사살왕이 여호와의 전에서 뺏어와 이방신들 창고에 두었던 여호와의 성전 그릇을 가져와 거기다가 술을 마시는 부분이 나온다.
그 부분으로 보아 분명 2절에 나오는 그릇은 식기로 사용되는 일반적인 밥 먹을 때 사용하는 그릇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성물이라는 것이 오늘 내용으로 추적이 가능한 내용이다. 그런데 왜 하필 그들이 성전에 두었을까? 이것은 많은 주석에서는 자신들의 신들이 여호와를 이겼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유다를 무너트린 것과 함께 자신이 여호와를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있으며 더욱 그 믿음을 확실히 하기 위해 예루살렘성전 에서 가져온 그릇들을 자신들의 이방신들의 창고에 보관한 것이 바로 우리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현재 느부갓네살왕은 아마도 승리에 도취되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최고이며 자신만이 지존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 후에 금으로 만든 신상을 만드는 것을 우린 보게 되는데 2절의 이 상황에서 우린 자신이 신을 이겼다고 생각하는 느부갓네살의 모습이 그저 불편하기만 하다.
우린 오늘 이 모습을 보며 작은 승리의 도취감으로 크게 취해 버리는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 작은 것에 우리가 만족하며 감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도 작은 것에 감사보다는 교만과 함께 자신이 무언가 최고 인 것 같이 자신을 높이며 당연히 여기는 그런 모습이 있다면 우린 경계를 해야 한다. 우리고 나중에 나의 작은 실력, 또는 작은 능력을 높이고 최고인줄 아는 금신상을 만드는 느부갓네살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승리는 하나님의 무능력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다에 대한 멸망의 선포를 이루시기 위해 바벨론이 그저 사용되어진 것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3-7절
“느부갓네살왕이 환관장에게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에 통달하고 왕궁에 설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고…” 4-5절의 주되 내용이다. 거기다가 출신은 또 귀족이거나 왕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완벽한 자를 찾아다가 인재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느부갓네살왕은 노략물을 챙기는 것에 그치지 않았고 좋은 인재가 있다면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 인재로 사용할 만한 자가 아니라 미래를 보며 준비 하는 차원에서 사상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바벨론의 사상과 이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로 지금 계획하고 있다.
거기에 바로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등장한다. 분명 이들 4명 말고도 더 많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위에 4명은 바로 자신의 진정한 왕이 누구인지 알고 있으며 잊지 않는 자들이었다라는 것이다.
우선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라는 것은 어떠한 남성적인 것을 떠나 남색을 위한 그런 성격의 이야기로 오해한다면 이것은 문제가 있다. 그저 흠이 없고 사지가 멀쩡하고 외모 또한 아주 준수한 소년, 즉 그 당시는 바벨론은 14-17세에 교육적인 부분에 집중이 되기에 교육을 받기에 적당한 나이의 남자를 뜻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출신이 비천하지 않아 행동이나 다른 왕궁생활에 잘 어울리고 교양이 있어 품위가 떨어지고 어떠한 자리에서도 어울릴 수 있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완벽 그 자체를 말한다. 그 중에서도 다니엘과 세친구는 여호와의 이름을 잊지 않고 믿음 또한 목숨같이 지키는 친구들이니 하나님의 동행이 있었을 것은 당연하다.
8-16절
왕이 내리는 음식을 먹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음식들은 좋은 것일 것이고 포도주 또한 아마 최고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내용은 한 가지만 말한다. 안 먹는 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다른 이방신의 제사상에 사용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중요한 것은 그저 제사음식이라서 먹지 않는다라는 그런 낮은 수준으로 이해할 문제가 아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8장8절에 이야기했다. 음식 자체로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니 먹는 것이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금은 다니엘과 세친구에게는 그런 논리가 아니라 이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겠다는 것이고 바벨론의 문화에 빠져들어 여호와를 잊어 버리는 모습에서 구별되는 삶을 살겠다는 강한 의지이다. 바로 다니엘의 믿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왕의 지정음식은 분명 최고급 음식임은 당연하다. 하지만 분명 거기에는 피를 제가하지 않고 날로 먹는 음식이나 아니면 돼지고기처럼 분명 레위기에 나오는 부정한 음식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의 이방신 느고의 제사에 사용되었던 음식들 같이 부정한 것들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음식으로부터 구별 되어지고 음식이나 작은 것이라도 그저 쉽게 생각하여 넘어 가지 않기 위해 다니엘과 세친구는 지금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환관장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우리의 실천에서 우리의 결단에서 나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환관장에게 이이야기 할 때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생겨 나는 것처럼 우리가 가만히 구하고자 하기 보다 우리가 진정한 믿음을 향한 결단과 확고한 실천이 있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은 우리와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우린 기억해야 한다.
17-21절
다니엘은 여기서 엄청난 엘리트였음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니엘과 세친구들에세 주신 지혜와 총명은 바벨론의 모든 엘리트들 보다 10배나 높다 라고 한다. 그저 그들과 비등한 것이 아니라 월등히 뛰어나는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종이라는 것을 우린 다니엘서를 통해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저 지혜만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보여준 다니엘과 세친구들은 행동과 마음을 포함하여 지혜까지 완벽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느부갓네살왕이 자신의 부족한 지혜를 채우기 위해 등용한 인재이지만 오늘 본다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행하실 일들 가운데 사용하시기 위해 세운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들의 총명은 느부갓네살왕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아닌 여화와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기 위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가있다.
마음으로 읽기..
다니엘과 세친구들은 멸망한 국가의 포로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종으로 지금 바벨론에 왔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다. 믿음에 도움이 안 된는 것들은 우리는 당연히 참아야 한다. 우리의 생활에 좋지 않는 것이 있다면 우린 당연히 멀리 해야 하고 아무리 편리하고 좋은 방식이나 좋은 해결책이라도 우리에게 불건전하다면 불편함을 감수 하고라도 우린 내려놓아야 한다. 작은 실력가지고 기술자처럼 행동하는 어리석은 모습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그분의 자녀 된 삶의 모습을 어떠한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지키려고 노력하는 다니엘과 같은 모습은 우리의 당연한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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