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21 구미중국인교회 주일설교
창세기 41장 51~52절
[ 고난, 고통, 어려움, 뒤에 오는 은혜 ]
창세기가 50장으로 되어있다. 요셉에게만 무려 13장이 할애 되어있다.
비일비재한 사람들의 몇 배가 할애되어 있다. 성경을 보면 41장 46절이 터닝 포인트이다.
고난 가운데 있는 내용은 4장 총리 이후에는 9장이다.
예수 믿는 것은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셉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믿음은 승리 이후에도 계속하여 승승장구하는 삶을 사는 것, 승리 후에도 넘어 지지 않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
한번 승리가 아니라 60대에 보아도 ‘이야~~ 하며 승리한 인생이구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혜를 통해 우리가 치유를 받아야 한다. 마귀는 우리에게 상처 아픔을 통해 공격한다.
(집안에 있는 상처들, 가정환경상의 힘든 것)
아픔이 있으면 모두가 독기를 품어야 하는가?
상처가 있고 한이 맺히면 얼마나 있는가? 요셉과 한번 자신들의 상처와 한번 비교해 보자.
**요셉의 상처 (요셉의 어머니는 라헬)
요셉의 아빠 야곱은 4명의 부인이 있었다. 요셉의 이름의 뜻은 더하다. 하나만 더 이런 뜻이다.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죽는다. 그때에 요셉의 나이가 대략 5살 정도이다. 요셉의 입장에서 요셉은 어머니를 잃은 것이다. 부모를 잃은 상처
집안에서 아버지 야곱의 편애로 인해 형들에게 많이 괴롭힘을 당했을 것이다.
사색을 해본다면 요셉과 베냐민은 많이 외롭고 괴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형들이 때리거나 괴롭히면 베냐민의 손을 잡고 들판이나 다른 곳 에가서 많이 울었을 것이다. 아마도 얼굴에는 멍도 있을 것이고 엄마도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베냐민은 엄마 라헬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요셉 어릴 때 엄마가 죽었으니 더욱 엄마가 그리웠을 것이다.
17살 때 형들이 죽이려고 했다.
구덩이 에 들어가 죽기 직전까지 갔다. 17살 때 충격을 겪었다. 창42장 21절 형들 또한 그때 일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충격闷雷 [mènléi]
그리고 노예가 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갔다.
궁금한 것은 이렇게 상처가 많은 요셉은 우리가 생각할 때 독기가 있고 한이 많이 맺혀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요셉은 없었다.
독기를 품다. 心怀歹毒 [ xīn huái dǎi dú ]
왜 없을까? 요셉은 하나님의 흘러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에 상처가 있어 독기가 생겨야 한다면 요셉은 독기가 얼마나 많아야 할까요?
사람이 힘이 생기면 어떤 생각이 날까요? 바로 복수이다. 예전에 보디발의 아내에 대한 일, 그리고 술 맡은 관원장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복수가 생각날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용서했다.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용서해라. 마음속으로 원수를 용서하고 축복해라.
饶恕[ráoshù] 용서 饶恕 [ráoshù]
용서는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요셉은 용서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첫째 아들 므낫세를 낳고 요셉은 다~ 잊었다고 했다. 모든 것을 다 잊었다고 했다.
그리고 에브라임을 낳고 더하셨다 하셨다. 축복을 더하셨다고 하였다. 부어 주시는 은혜와 축복으로 상처를 치유하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문화는 용서의 문화이다.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독생자 아들인 예수님을 이곳으로 보내셨는데 왜 우리가 용서를 못할까요?
용서는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용서의문화는 아주 필요한 것이다. 용서의 문화가 생길 때 주님의 은혜와 축복은 흘러 넘칠 것이다.
2. 문제에 반응 하는 것에서 사명에 반응 하는 신앙이 되어야 한다
Ex) 어떤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어렸을 때는 공부에 대해 기도를 했다. 하나님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제 짝은 공부를 잘하는데 왜 저는 못하나요? 저도 공부 잘하게 도와 주세요.
그리고 좀 더 커서는 요즘 친구한테 맞고 다닙니다. 저도 싸움 잘하게 해주세요. 이소룡 같은 발차기를 주시고 성룡과 같이 많이 맞아도 한방에 끝낼 수 있게 해주세요.
예쁜 여자랑 결혼 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좋은 집도 주시고 좋은 직장도 주세요. 그리고 자식이 잘되고 건강하게 해주세요.
말년에 늙어서는 또 하나님 안 아프고 죽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일들만 가지고 계속하여 기도하며 지낸다. 물론 하나님은 다 들어 주신다. 하나님께기도 하는데 다 들어 주신다.
그러나 밤낮 기도하며 사는데 그 기도를 보면 문제에 대한 기도이다. 문제를 회피하는 기도만 한다. 이것이 “기복신앙”이다. 모습은 좋아 보여도 결코 좋은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명으로 사는 사람은 어려움이 있던 없던 신경 쓸 것이 없다.
선교를 가서 좋은 곳에서 자던 나쁜 곳에서 잠을 자던 신경 쓸 것이 없다.
어떨 때 보면 한겨울에 이불 없이 맨바닥에 자기도 한다. 재작년 겨울 총칭 여행 때는 화로 옆에서 6명이 작은 의자에 앉아서 잤다. 자다가 허리가 너무나 아파서 정말 끊어 지는 줄 알았다.
너무나 힘들었는데 괜찮았다. 왜냐면 사명이니깐. 여행이 아니니깐.
좋은 것을 먹던 좋지 않은 것을 먹던 아무 상관이 없다.
바울이 빈궁에도 처할 줄 알고 부한 것에도 처할 줄 안다고 하는데 여기서 바울이 어떤 상황이던지 다 처신 할 줄 안다기 보다는 어떤 상황이던 무엇이 문제냐는 것이다.
돈이 있던 없던 사명 앞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두 종류에 길이 있다. 좋은 길과 나쁜 길.
탄탄대로의 고속도로를 가는 길과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길. 우리는 길만 본다.
하나님 여기 길이 아주 좋네요, 포장도 잘되어 있네요. 아주 좋아요.
그리고 한길은 “하나님 길이 너무 좋지 않네요 차가 가질 못하네요. 어떻게 이런 길을 갑니까?
우린 오로지 길만 비교한다.
꼬불 한 길 그리고 직선의 대로.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길의 포장을 비교하지 말고 길의 도착 지점을 비교해야 한다.
길의 도착 지점이 중요하다. 길이 아무리 좋아도 끝이 안 좋으면 좋지 않은 길이다.
좋은 생활을 하던 아니던 우린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좋아야 한다. 아무리 잘살아도 도착지가 좋지 않으면 좋지 않다.
*결론
첫 번째 하나님 앞에서 한 순간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승리하는 지체가 됩시다. 그러기 위해 독기 미움 상처가 너무나 많습니다. 없어야 합니다.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주십시오. 혹시 상처가 있습니까? 그럼 기도하세요. 하나님 은혜를 주셔서 치유하여 주십시오.
두 번째 우리 은혜 가운데 힘이 생기면 우리 용서 합시다. 용서 가운데 성숙해 집니다.
세 번째 하나님 제가 문제에만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다 큰 사명에 반응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다.
우리 모두다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삽시다.
우리 인생의 질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끝을 보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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