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많은 이주민 친구들을 만나왔다. 그러다보니 몇 번 보지 않았거나 오랜만에 만나친구들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히 얼굴은 낯이 익은데 이름이 금방 떠오르지 않을 때 아주 난감하다. 물론 반대로 이름은 기억이 나지만 생김새를 전혀 알아보지 못할 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알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분 좋고 기쁜 일이다.
아내랑 함께 이주민 친구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이름을 물어 보는 것이다. 전화번호, 나이 혹은 어디에 사는지 등을 물어 보기 전에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인사와 함께 이름을 묻는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이름을 적어가며 외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름이 워낙 길고 어려운 나라 친구들이 많아 쉽지가 않다. 그때 마다 적어놓고 기억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 특히 우리교회는 이름과 함께 국적 또한 함께 물어보고 외워야 한다. 이름을 물어보고 외운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발음이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급하게 이름을 부를 때 많은 실수를 하기도 한다. 다른 친구의 이름이나 엉뚱한 이름이 튀어나올 때면 괜스레 미안해지곤 한다.
누군가를 기억해주는 것,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기분을 좋게 할 뿐만 아니라 존재에 대한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한다고 생각된다. 역사는 대단한 업적을 남긴 영웅에 대한 이름을 기억하고 세상은 부자나 힘 있는 권력자들의 이름을 기억한다. 교회에서도 헌금 많이 한 사람의 이름이나 중직자의 이름이 기억된다. 이름을 듣는 순간 그 사람이 떠오르기에 우리는 이름을 기억하거나 적어 둔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특히 누군가의 이름을 잘 기억하시고 부르신 것 같다. 거지 나사로, 세관장 삭개오, 여성 마르다와 마리아 같이 당시 사회적으로 약자인 그들의 이름을 예수님은 기억하시고 부르셨다. 세상과 교회에서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약자들의 이름을 예수님은 기억하셨다. 예수님은 특별히 약자들의 이름을 부르시며 그들이 세상에서 새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우셨다. 강자의 이름은 굳이 외우지 않아도 잊어버리지 않는데 약자의 이름은 외우지 않으면 기억하지 쉽지 않다.
나는 그동안 만나온 이주민 친구의 이름을 전부 외우지 못한다. 아마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있을 경우 이름이나 얼굴이 금방 기억이 나지 않아 당황 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어도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두 친구의 이름이 있다. 캄보디아에서 온 ‘낙’ 과 스리랑카에서 온 ‘로미스’이다. 큰 꿈을 가지고 자신의 나라에 가족을 두고 한국에서 일하러 왔다가 운명을 달리한 그들의 이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가지만 가끔 기억 날 때면 아내와 함께 그들의 이름을 한번 불러본다. 그리고 낙과 로미스와 가졌던 시간들을 추억하며 잊지 않으려고 기억 저편에 숨어 있는 에피소드를 끄집어낸다. 오로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약자의 삶인 이주민 노동자로 살아간 그들이지만 이곳에서 누군가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기에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이고 헛되지 않은 인생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예수님은 낙과 로미스와 같은 약자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다. 약자들에게 친히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교회는 닮아가야 하지 않을까? 교회는 그들을 사랑하기위해 이곳에 존재해야 하지 않는가에 대해 깊게 고민해본다. 제일 먼저 할 것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고 먼저 다가가서 만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난 세상이 기억해주지 않는 그들의 이름을 나는 기억하려한다. 세상이 만나지 않으려고 하는 그들을 나는 만나려고 한다. 금방 추억이 되어버린 그들과의 시간을 나는 되새기려 한다.
글쓴이 : 권주은 목사(구미국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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