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어른 들이 숱하게 하신 말씀이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었고 집을 떠나보지 않은 어린 나에게 이해 할 방법이 없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인이라면 아마도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이주민의 삶은 ‘고생’ 그 자체의 일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특히 아프고 배고플 때 그때가 가장 고향이 그립고 가족이 보고 싶을 때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 할 것이다. 사실 이주민 친구들이 먹을 양식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고향의 음식이 늘 그립다. 아프거나 다쳤을 경우는 상황이 달라진다. 특히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어와 현지 정서를 모르는 그 당시에 두렵고 어쩔 줄 몰라 당황하게 될 때 아마 가장 난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때 주위에 전화 한 통하며 함께 고민할 현지 친구가 없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중국 산동성 ‘위해’시에서 온 유학생인 M형제는 캠퍼스 입구 스쿨버스 정류장에서 사고가 났다. 스쿨버스 옆, 짐을 싣고 내리는 트렁크 덮개를 열고 있던 버스가 앞차와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트렁크 덮개를 닫지 않고 그대로 이동하다 옆을 지나가던 중국 유학생의 M형제의 어깨를 치고 지나간 것이다. 다행히 주위사람들이 놀라며, 지르는 고함 소리에 차는 빨리 멈췄지만 M형제의 어깨를 친 후였고 이미 그때는 주저앉아 고통스러워 움츠리고 있었다. 재빨리 내리신 기사님은 M형제의 상태를 체크하며 괜찮냐고 몇 번이고 물어 보았지만 한국에 온지 몇 달 되지 않은 유학생 M형제는 그저 그 자리에서 몇 마디 하지 못하지 못했고 주위 지나던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어 구경하든 쳐다보는 시선이 부담되어 아픈 몸을 이끌고 그냥 기숙사로 도망치듯 돌아와 버렸다고 한다. 이후에 들은 말로는 당시 사고로 혹시나 한국에서 체류하는 부분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근심까지 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언어가 아직 부족하고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사례일 것이다. M형제는 그렇게 아픈 어깨와 등으로 인해 수업시간에 출석도 못하고 기숙사 침대에 그대로 며칠을 누워있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기숙사를 찾아 방문을 열어 보았다. 어둑한 기숙사 방 안쪽 이층침대 윗 칸에 엎드려 누운 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M형제를 발견했다. 발을 흔들어 깨우며 상태를 물어보니 그때서야 닫혀 있던 입이 오열과 함께 마구 열리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고통스러운 몸 상태에 대해 쏟아낸다. 당시 M형제의 상태가 심각해 보여 바로 차에 태워 병원으로 달렸다. 사고가 난 스쿨버스 기사님과 전화 통화를 해보니 기사님께서도 그동안 걱정하고 있었다는 말씀을 반복해서 하신다. 당시 상당히 아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는데 그냥 혼자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M형제가 떠나버려서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셨다는 내용이다. 물론 괜찮다며 M형제가 그냥 가버렸지만 육안으로도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그냥 가도록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 왠지 나에게는 핑계 같이 들렸다.

중국에서 온지 몇 달 되지 않은 유학생이 사람들로 붐비는 낯선 캠퍼스 스쿨버스 정류장에서 경미한 사고가 났고 주위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들며 구경했다. 그 상황에 사고 버스기사님은 알아들을 수 없는 한국어로 계속무엇을 물어 본다면 아주 난감 했을 것이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주위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도망치듯이 기숙사로 돌아오는 그 길이 얼마나 비참했을까 생각해보니 마음이 아팠다. 부어 오른 몸으로 어둑한 작은 기숙사 복도 끝 방 이층침대에 누워 자신이 당한 사고의 순간을 몇 번이고 떠올리며 몸과 마음을 아파했을 M형제의 당시 마음에 내 가슴이 함께 먹먹해진다. 땅에 엎드려 한손으로 어깨를 감싸며 고통스러워하던 그 순간 단 한명의 학생도 구경이 아닌 관심을 가지고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없었다. 분명히 교통사고를 당한 친구가 상당히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보이는 상황에 행색이 조금 다르게 보이고 한국어를 못하는 유학생이 주위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고 부담되어 그냥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할 때 왜 단 한명도 다친 학생을 잡지 않았는지 머릿속에서 해명거리를 생각해 보지만 잘 풀리지 않는다.
낯선 땅, 혼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이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이다.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어렵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낯선 땅에 홀로 살아가는 이주민에겐 언제나 전화 걸 수 있는 친구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귀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먼저 전화 한통 걸어 줄 때 내가 먼저 이야기의 씨앗을 심는 다면 쉬운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이웃과 이주민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기록된 성경의 작은 실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쓴이 : 권주은 목사(구미국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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