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곽의 시골길임에도 논·밭과 함께 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공단도시 구미이다. 그중 눈여겨볼 특징 중 하나가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친구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도심에 거주하는 외국인노동자들과 다르게 외곽에 거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은 주말에 도심으로 빠져 나오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부분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 가장 큰 불편 중 하나이다. 이동 할 수 있는 수단인 차량이 없는 친구들은 한 달에 한두 차례 정도 잠시 가까운 상점에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재료 등을 한 번에 구입하여 비축하고 생활을 한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도심권 외국인 노동자들에 비해 만날 수 있는 한국인들이 거의 없으며 기회조차 생기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주말하루 쉬는 날 이동시간을 많이 허비하며 장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어쩌면 다음날 근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자제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구미 주변 외곽지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주말이나 평일 저녁 퇴근하고 난 후 무료하게 있는 그들에게는 우리와의 만남이 큰 위로가 되고 주말의 기쁨이 될 것이기에 언제나 시간이 되는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다. 외곽에 있는 공장들을 찾아가 승합차 뒷 편으로 불러 함께 이야기도 하고 복음도 전하고 찬양도 하였다. 시간이 흐른 뒤엔 성찬과 세례도 주었다. 작은 승합차 뒷자리 시트를 돌려 서로 마주보며 앉아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조금 어색하지만 어떠한 예배장소보다 아주 훌륭한 예배당이 되기도 했다. 작은 테이블에 옹기종기모여 앉아 대화와 찬양을 할 때면 마이크보다 더 좋은 울림으로 어느 음향보다 더 아름답게 들렸다. 그리고 눈여겨 볼 것은 설교시간이다. 나와 아내는 앞에 앉은 외국인 친구의 한국어 수준에 맞추어 성경을 함께 보며 말씀을 나누기에 이해도와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매주 만나는 스리랑카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 구미에서 조금 떨어진 성주 어느 시골 마을 산 중턱에 위치한 공장으로 갔다. A형제와 S형제는 나이는 서로 다르지만 친구처럼 때론 친형제처럼 서로 의지하여 사이가 아주 좋았다. 그들은 우리가 갈 때 마다 아주 반갑게 웃으며 전화를 끊기 무섭게 교회 승합차로 달려오는 형제들이었다. 그날도 A형제가 어느 때처럼 전화가 끊어지기 무섭게 승합차로 달려왔다. 서로 반갑게 그간의 안부를 나누는 동안 평소와 다르게 S형제가 보이지 않았다. A형제와 대화가 길어질수록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하기 시작했다. 혹시 두 사람이 싸웠나? 아니면 무슨 일이 생겨 이곳을 떠났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마음 졸이며 있으니 신경이 너무 쓰였고 연신 창문 넘어로 S형제가 오는지 계속확인 했다. 겨울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들리고 승합차를 흔들어 될 만큼 강하게 불어오는 그때 바람 사이로 쟁반을 조심스럽게 들고 종종걸음으로 오는 S형제가 보였다. 그 순간 조금 전 불안도 잠시 도대체 뭘 들고 오는지 고개를 들어 계속 보았다. 가까워질수록 눈에 선명하게 확인 되는 것은 네모난 쟁반에 믹스커피 몇 봉지와 쿠크다스 몇 개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유리주전자였다.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실 커피를 준비하기위해 뒤늦게 나온 것이다. 그 상황에 하고 싶은 표현은 정말 많았으나 너무 놀라 그저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표현이 없어 미안했다. 하지만 말문이 막힐 만큼 너무 감동적인 S형제의 모습에 이제 진짜 친구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너무 기뻤다.
“오늘 올 줄 알았어요. 기다렸거든요. 다음 주도 오고 계속 와요~”
일주일에 한 번, 잠시 승합차 뒷자리에서 만나는 이 시간이 스리랑카 형제들에게 기다려지는 시간이고 위로가 되고 휴식이 된다는 S형제의 말은 오히려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렇게 승합차 뒷자리는 서로에게 위로와 기쁨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갔다. 쟁반에 놓인 유리주전자의 미지근한 물로 태운 커피가 지금도 입 안 가득 향이 남아 있는 듯하다. 또 다른 산속 공장으로 차를 몰고 떠나며 우리는 시골길에 지나가는 외국인 친구가 보이면 승합차 뒷자리로 그들을 초대 할 것이다. 그때 또 다시 물어보려고 한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글쓴이 : 권주은(구미국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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